난생 처음으로 ‘혼자’ 영화를 보았다.
아침에 인터넷으로 상상마당 시네마를 검색했는데 ‘당일 예매가 불가능한 극장입니다’라고 나와서 김이 샐 뻔! 했다가, 알고 보니 당일 '온라인' 예매가 불가능한 거란다. 가서 표 사면 된다고... 영화 사전 예매를 안 해봐서요;;
그 비싸다는 리치몬드 과자점에서 초콜릿 몽블랑 하나 사고,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커피숍에서 Take-out 커피 한잔 사들고, 여유롭게 영화 시작까지 기다.............리려고 했으나 몽블랑이 내가 생각했던 그런 폭신폭신한 과자가 아니고, 한번 씹을 때마다 크런치 덩어리 우거적 우거적 씹는 소리 나면서, 먹는 거 반, 가루로 떨어지는 거 반, 이래가지고 몽블랑을 커피에 곁들여 달콤하게 섭취하는 행위는 포기..................하고 커피만 홀짝댔다.
영화관에 비치된 책을 뒤적거리다가 곧 시작한다고 해서 들어가는데, 상상마당이라 그런지 나처럼 혼자 영화 보러 온 사람이 많았다. 행여 내 시야에서 커플이 똑바로 안 앉고 대각선의 불량한 자세를 하고 있는 걸 발견하면 영화에 집중을 못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영화-라기보다 다큐에 가까웠던- <쿠바의 연인>은 기대했던 것만큼 괜찮았다. 매우 즐겁거나 감동이 있는 건 아니지만, 소소한 웃음과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영화였다. 혼자 영화를 봐서 그런지, 영화와 내가 1:1로 교감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옆에서 같이 보는 친구가 웃어서 같이 눈 마주치며 따라 웃거나 하는 것 없이, 오로지 나 혼자만의 감정으로 영화에 반응했다.
종종 ‘이 크런치 소리나는 몽블랑 대신 부드러운 타르트를 사왔더라면 지금쯤 먹어줬을텐데’ 정도의 잡생각도 하면서, ‘저 사람도 혼자 왔을까’ 하는 딴생각도 하면서, 여러명이 같은 목적으로 모여있지만 스크린과 교감할 뿐인 이 영화관이라는 공간에 대한 생각도 하면서, 영화 끝에 그들이 결혼할 때는 눈물 콧물을 훌쩍대기도 하면서 시간이 훌쩍 갔다.
혼자 영화보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달콤했다. 왜 이런 걸 진작 못 해봤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동안 집에서 다운 받아서 혼자 보는 건 많이 해봤지만 영화관에서 혼자 보는 건 그것과 많이 다른 맛이 있었다.
연애할 때도 나는 영화를 별로 안 보는 편이었다. 만나면 대화하고 싶고 얼굴 보고 싶은데, 영화를 보면 그럴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영화관에 간 것도, 추석 때 사촌동생들 데리고 나가 놀다 오라는 임무를 받았는데 할 게 너무 없어서 <무적자> 보고 들어온 거였다.
가만 보면, 그동안 영화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보기 위해 돈 쓰는 것에 좀 인색했다. 맨날 술이나 먹고...
그래, 새해에는 문화생활도 좀 하자꾸나.
(근데 오늘 쓴 글은 '문화'생활이 아니라 문화'생활'을 한 듯한 글이군. -_-)
영화평도 조금 써보자면-;
남주인공(쿠바인)의 두 가지 말이 인상 깊었다.
자신을 교화시키려고 기독교 성경을 주입시키는 한국인 장모님에 대해서 ‘그녀 나름의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것을, 그녀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에게 주려고 하시는 것이겠지요...’ 라고 그녀를 이해하려고 했던 말, 그리고 어떤 한국인이 ‘당신은 사회주의자인가, 자본주의자인가, 공산주의자인가’ 라고 물었을 때 ‘난 뭐로도 규정짓기 싫어, 그냥 세상을 사는 사람이야, I love life~' 라고 했던 말... 마치 내가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을 지향하지만 페미니스트로 규정되기는 싫은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페인트칠 하다 말고 춤추는 쿠바인들의 느긋함, 여유로움? 혹은 게으름.
한국에서 저랬으면 바로, 해고! 일텐데.ㅋㅋ
아... 근데 나는 요즘,
빠릿빠릿하게 살면서 살아남느냐, 베짱이처럼 살면서 도태되느냐의 기로에서
차라리 도태되도 좋으니 베짱이가 되고 싶다고 꿈을 꿉니다. 많이, 아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