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앞 포장마차에서 파는 컵떡볶이는 당시 우리 동네 분식계의 최고봉이었다.
할머니가 그 '지저분한' 거 사먹지 말라며 종종 집에서 떡볶이를 해주었지만,
밖에서나 느낄 수 있는 조미료 듬뿍의 바로 그 맛, 그 맛을 집에서는 낼 수 없었다.
심지어 할머니는 떡볶이에 대파와 참깨도 듬뿍…. 아, 이건 참된 분식이 아니라구요!
그리고 컵떡볶이는, 반드시 '종이컵'에 넣어주고 이쑤시개로 찍어먹어야 제 맛이다.
집에서 세팅해주는 과일 담는 넓은 접시와 쇠젓가락은 역시, NG.
일찍이 불량한 맛에 익숙했던 나는 “참된 군것질”의 맛을 할머니에게 설명하고자 애썼다.
왜 내가 직접 만들 생각은 전혀 안했냐고 물으신다면.... 음... 그건...
부엌은 할머니 꺼;;;;.......................
할머니는 “뽑기”도 만들 줄 알았지만, 꼭 only 소다만 넣기를 고집했고 또 너무 두껍게 만들었다.
가끔 두껍게 만든 뽑기를 수어개씩 만들어주셨지만, 산더미같이 쌓아놓는 뽑기에는 손이 안 갔다.
설탕 냄새 풀풀 풍기는 길거리에서 감질나게 100원씩 주고 사서, 지저분한 손으로 만지작 거리면서, 핀에 침 발라가며 모양 째다가, 부서지면 먹고. 그게 뽑기의 맛이지.
#. 하여간, 할머니는 밖에서 뭘 사먹는 걸 매우 안 좋아한다. 반면에 나는 이래저래 사먹을 일이 너무 많다. 편의점 김밥도 잘 먹고, 샌드위치나 컵라면도 자주 먹는다.
그나마 대학생 때는 늘 ‘같이’ 먹을 친구들이 있어서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오늘 문득 따져보니, 나의 카드명세서에 편의점이 너무 많다. 언제부터 이리 된 것이지? 다 즐겁게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인데, 뭐가 이리 바빠서 음식을 즐기는 것을 포기하고 그저 위장을 채우기에 급급하며 살아왔는지 모를 일이다.
나 뿐만 아니라, 편의점에 쪼르르 서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먹는 다른 직장인들도…. 어떤 직장인들은 그나마의 위장도 채우지 않는다. 책상 위에는 비타민C,D, 스피루니나, 영양제, 선식가루, 한약, 등등... 뭐 이런 간단한 약 류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산다.
#. 카드명세서를 보면서 나름 재미있고도 슬픈 발견을 한 것 같다. 내가 뭘 먹고 사는지 새삼 발견했달까... 어제는, 점심에 햄버거, 간식으로 컵라면, 저녁에 빵을 먹었다. 바쁘고, 일하면서 먹겠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다가... 저녁에 집에서 얼음물을 벌컥벌컥 마셔도 가시지 않는 갈증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오늘 아침에 할머니가 해준 녹두죽을 먹고 알았다. '밥을 먹어야해!'
#. 그래서 오늘은 작심하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었다. 아주~ 간만에. 집에 오는 길에 치킨과 피자와, 심지어 지하철의 델리만쥬까지 날 유혹했지만 집밥을 먹겠다는 일념 하에 꿋꿋이 와서 먹었다. 할머니는 나의 전화를 받고 감격해서 된장찌개를 새로 끓여주셨다. 아.. 나으 할마마마 이시어….ㅡㅜ
사실 집밥 먹기가 하늘의 별 따기 이다. 난 내일도, 모레도, 주말에도 집에 없을 것이다앙. 담주 월요일에도. 화요일에도.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에도 캬하하하하핳하;;;;;
다만 이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웬만하면 점심에라도 집밥과 집반찬을 먹기로 굳게 다짐했다. 편의점 김밥, 안녕! 이젠 진짜 널 멀리 하겠어 (물론. 영영 안 보겠다는 뜻은 아니........................아 이런 나약한 모씁)
호호호 맛있는 밥 먹고 간만에 포스팅까지 하니, 간만에 방학 맞이한 대학생이 된 것 같다.
우리 할머니의 위와 장은 정말이지, So much Pure 그 자체일 것이다.
매일 이런 곡물밥과 신선한 나물을 먹는단 말이지!
할머니 내일도 도시락 싸주세염. 컁컁, 싹싹 비워먹겠사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