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에서 영어몰입교육의 일환으로, 초등학교에 정교사 외에 영어젼문강사를 배치했다. 2년 전 영어젼문강사를 뽑기 위한 시험이 있었는데, 이 시험에는 초등임용에 수차례 떨어졌거나 기간제로 초등학교에서 일하던 교사들이 대거 지원했고, 어지간해서 T.O가 나지 않던 초등학교 교사 자리에서 무려 한 개 학교 당 한명 이상의 자리가 생긴 것이기 때문에 일순간 청년실업의 비율을 낮추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영어젼문강사는 4년제 비정규직이고, 그나마 첫해에는 교육청 직접고용 후 각 학교로 파견하는 형태였으나 2011년부터는 각 학교에서 재량으로 채용하라고 했단다.
우리 엄마는 그동안 복지관과 학교 방과후 활동, 학원 등에서 강사로 활동했지만, 늘 불안정한 고용상태, 사회적 체면에 대한 콤플렉스가 컸다. 그러던 차에 이 자리는 엄마에게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교대 출신의 20대 젊은이들과 겨루어 당당하게 영어젼문강사 시험을 통과했다.
그렇지만 MB정책에 구멍이 얼마나 많은지, 엄마의 1년을 보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모든 영어젼문강사들은 자신도 “선생님”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현실은 딴판이었다. 학교에는 이들의 책상도, 컴퓨터도 없었다. 학교 입장에서 이들은 ‘방과 후 외부강사’가 낮시간에 와있는 것뿐이었다. 대부분의 영어젼문강사들은 ‘기간제 나부랭이’보다도 못한 한직 대접을 받았단다. 기간제는 학교 체육대회나 소풍이라도 같이 가는데 영어젼문강사들은 수업시간 때만 있을 뿐이고, 두 학교를 뛰는 강사의 경우에는 점심조차 못 먹고 이동할 때도 있다고 한다.
엄마도 두 학교를 배정받아서 늘 무거운 노트북과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돌아다녔는데, 내년 재계약 기간이 다가옴에 따라 한 학교의 교장과 면담을 했단다. 엄마가 책상이 없어 힘들다고 했는데, 교장은 흔쾌히 놓아드리겠다고 해서 몇몇 사람들이 엄마 책상을 둘 자리를 보고 그랬나보다. 그런데 평소, 엄마를 아니꼽게 본 30대 초반의 여선생들이 ‘내년에 5학년만 맡아서 5층에만 있을 건데, 3층에 책상을 뭣하러 놓느냐’고 시비를 걸다가, 결국 엄마가 다른 학교 강의를 나갔을 때 책상 설치 안 하는 것으로 결정났다고 한다.
그동안도 각종 공문을 써야 하는데, 엄마에게 기본 포맷도 안 주고 ‘알아서 써라’라고 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나마 이 “영어젼문강사 커뮤니티”가 있어서 거기에서 서러운 점도 많이 토로하고 자료의 도움도 많이 받는데, 웬만한 부장선생님보다 나이가 많은 엄마의 시련은 약과란다. 자기 일도 아닌데 시키고, 대놓고 무시하고 시비걸고... 그래서 상당수가 한학기만에 관두었고, 이번에 재계약 안하는 사람이 절반은 될거란다.
일은 일대로 하면서, ‘교사’라는 대접조차 못 받는 암울한 이 제도의 한 가운데에 우리 엄마가 서있다. 엄마는 그나마 4년정도 일하면 정년 나이이기 때문에 상관없다. 하지만 거의 모든 영어젼문강사들은 앞길이 창창한 20대 중후반이고, 이걸 관두면 다시 초등임용을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왜 그리 정교사들의 텃세가 센지는 모르겠지만, MB정권에서 영어몰입교육 제도 시행하고 채 1년도 안되서 고름이 철철 넘쳐나니 하늘이 곡할 노릇이다.
헌데, 내가 “교사들이 영어젼문강사에게 뭐가 불만인지 모르지만, 있으면 교육청 가서 말하라고 하지 뭐?”라고 했더니, 엄마 왈 “그럼 싸움밖에 더 되냐?” 란다. 그럼 지금은 싸움이 아니야? 그렇게 교사와 강사 사이에서 신경전만 벌일 것이 아니라, 요구할 게 있으면 교육청 가서 얘기해야지 말이다.
자꾸 그 교사들 욕만 하고 앉아있길래, “그런 일인지 모른 엄마 잘못이지. 세상이 그런거잖아? 교육청에 요구도 못할 거라면 참고 다녀야지 안 그래?” 하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 정책의 탓을 하면 바로 좌파색깔이라며 경기를 일으키는 엄마에겐 "정책의 잘못이 없다면, 무식해서 비정규직밖에 못하는 당신 탓이야. 억울하면 정교사 하지?"라는 말 말고는 답이 안 나오지 않는가, 하아... 나도 참...
어렵게 채용된 강사들이 교사의 꿈을 채 펼쳐보기도 전에, 허술한 정책에서의 등쌀에 휘말려 1년만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정교사 시험에 다시 도전한다고 한들, 이들의 지난 1년은 ‘배운 1년’이 아니라 ‘소모한 1년’이 될 것이고, 학교에 질려버린 이들은 차라리 학원가가 더 대접받는다며 학원으로 눈을 돌린다.
영어젼문강사들도 다들 들고 일어나야 할뿐더러, 교사들도 뭔가 불만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럼 그걸 강사들한테 시비 걸고 할 것이 아니라 교육청에 가서 항의 해야지!
아이들에게는 법치고 민주주의고 도덕이고 가르치면서 어쩜 그러냐...
갓 사회에 진출하는 20대들이 이렇게 자기밥그릇 가지고 싸우느라 뜻도, 꿈도 펼쳐보지 못한채 무수히 사그러진다. 이 나라의 앞길이 캄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