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지하철 기점에 가까운 끝자락이여서, 난 항상 지하철에 타자마자 1-1 문가 벽에 기대 서있는다. 이 자리를 지키고 서있어야 출근인파가 쓰나미처럼 들어왔다가 나가는 재난상황에서도 용케 밀리지 않고 살아남는다. 자칫하면 나와 30cm 이상 차이나는 키큰 사람의 가방에 내 얼굴이 파묻힐 수 있고, 나보다 쪼매 키 큰 사람들(거의 대부분;;;)의 기침과 트름이 혼재한 아랫공기를 다 마셔야 한다.
고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내 자리는 항상 여기다.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곳.
오늘도 여김없이 1-1 문가에 서서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다리 사이로 뭐가 쑥 들어갔다 나갔다. 하필이면 날씨 좀 풀렸다고 발랄하게 치마 입고 나왔는데 이게 뭥미? 상황을 살펴보니, 어떤 청년이 핸드폰을 떨어뜨렸는데 배터리 뚜껑이 열리고 산산조각; 까진 아니여도 여하튼 배터리가 내 다리 뒤로 날라갔는데, 내가 문가 벽에 딱 붙어있다보니 내 다리 뒤에서 꺼낼 생각을 못하고 다리 사이로 손을 쑥! 넣은 것이다. 사실 나는 상황 파악이 되고 나니 별로 당황스럽지 않았는데, 그 청년이 너무 당황하여 나에게 "죄송합니다"를 무려 3번이나 남발했다. 핸드폰 배터리부터 끼시지.. 내가 "무슨 짓이야!" 하고 경찰서 데려갈까봐 겁이라도 났나? 폰을 떨어뜨려서 당황한 것도 있겠지만, 표정이 너무 굳어서 내가 오히려 "저 진.짜. 괜찮은데요" 할 뻔했다.
내가 음악을 안 듣고 있었다면, 핸드폰 떨어지는 소리도 들었을테고 (아침 출근지하철은 단체기합 받을때처럼 완-존 싸하고 적막하니까..) 내가 먼저 주어줄 수도 있었을테다. 단지 음악 듣느라 그 상황을 좀 늦게 깨달았고, 처음에 그 사람을 "깜짝 놀란 표정으로" 쳐다봐서, 그 사람이 더 당황한 것 같다.
예전에 친구들과 대중교통 이용시에 발생하는 성희롱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한 남자친구는 마르고 선한 인상이었고 한 남자친구는 키도 크고 우락부락(?)까지는 아니어도 결코 약해보이지 않은 인상이다(<- 곰곰 입니다...-_-;;;;ㅋㅋ)
그러나 둘은 인상에 상관없이,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지하철 탈 때 여자들 옆에 서면 긴장한다고 했다. 반드시 손잡이나 가방끈을 잡고 있는다던지, 웬만하면 여자들 옆에는 바짝 붙지 않는 것이 그 둘의 대처법이었다.
나와,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여자친구들은 모두 "너무 긴장하지 말아라" 라고 했다. 우리의 공통된 의견은, 무조건 TOUCH 한다고 해서 다 성희롱이라고 하진 않는다는 거다. 만약 누군가 이상한 TOUCH 를 해오면 1) 제일 먼저 그 사람을 쳐다본다. 그럼 단박에 이게 고의인지 실수인지 알 수 있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지만 종종 TOUCH해놓고 모르는 남자사람도 있다. 그럼 2) 그 상황을 본다. 이게 그 사람이 이리저리 지나가던 중에 실수로 친 건지, 아님 쳐놓고 딴청하는건지.
남자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아냐'고, '고의로 TOUCH 한 후, 실수였던 척 사과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했지만 여자들 대부분이 고의적 TOUCH 를 경험해봤기 때문에 알 수 있다. 그리고 일단, 고의로 TOUCH 한다는 자체가 여자사람을 우습게-_- 여기는 몰상식한 넘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표정에 "어머 어떡해요 실수였어요"라고 연기하지도 않는다.
고로,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굳이 여자사람을 TOUCH하지 않고자 기쓰고 애쓸 필요까진 없다.
밧뜨! 어쨋거나 현실은 남자사람=잠재적 가해자, 여자사람=잠재적 피해자로 보는 부분이 있으므로 어느 정도 긴장하는 것은 서로를 위하여 좋을 듯 하다.
시각장애인에게 어느정도 반경을 두고 비켜주며,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듯, 다른 성별끼리는 어느 정도 서로 배려하는 것도 좋다는 말이다.
같이 생활하는 공통기반이 늘어나는 만큼, 각기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배려해주기,, 지하철 여성전용칸도 "일부"대안은 될 수 있지만 결국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이론과 체계보다 배려와 인내하는 마음을 수양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