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1. 학교 총장-재학생 간담회 참여 이후 학교 게시판에 글을 썼다.(http://gangchong.egloos.com/1525754) 의외로 장문의 글이 최고히트를 치면서 학생들의 환호를 받았고, 얼마 후 학생처의 호출명령을 받았다. (그렇다고 간 나도 참 한심-_-ㅋ)
사건 2. 학생문화복지팀장이 어이없게도 화를 냈고, 이어서 학생처장은 나를 달랬다. 둘이서 채찍과 당근을...
사건 3. 학교 게시판에 [사건 2]에 대해서 또 글을 썼다.(http://gangchong.egloos.com/1743558)
사건 4. 또 붐이 일었고 그 기세에 학내 데모라도 해볼까 했으나 우야무야 실패로 끝났다.
(http://club.sookmyung.ac.kr:8086/bbs.normal.view.screen?bbs_id=16&message_id=250637¤t_sequence=01GAY%7E&start_sequence=01BRS%7E&start_page=1&direction=1&search_field=register_name&search_word=%BF%C0%BC%BC%C0%BA)
사건 5. 총학생회 후보들을 '검열'하는 이경숙같은 선관위의 행패에 반대하며 보이콧선언을 한 한 총학생회 선본에 끼어서 같이 보이콧 선언과 기자회견을 했으나 우야무야 끝났다.
(http://club.sookmyung.ac.kr:8086/bbs.normal.view.screen?bbs_id=16&message_id=253594¤t_sequence=01GAY%7E&start_sequence=01BRS%7E&start_page=1&direction=1&search_field=register_name&search_word=%BF%C0%BC%BC%C0%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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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6개월 동안 고이 모셔두었던 학생처와의 통화기록을 다 지웠다. 당시 사건은 폰을 새로 산 직후에 있었던 일이라 그 통화기록이 내 폰에서 1~7번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문자 역시, LG가입환영 문자가 1-2번째, 학생문화복지팀 대리의 문자가 3번째였다. 약 6개월간, 나는 행여나 이 기록들이 지워질까봐 틈틈이 통화기록과 문자가 100%를 넘지 않도록 웬만한 것은 바로바로 지워댔고, 이 보기 싫은 내용을 고이 간직했다.
12월 이후로 딱히 한 것도 없었으면서 굳이 간직하려 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사실 요 근래에는 완전히 잊고 있다가 학교 홈페이지에서 이번 학기 총장-재학생 간담회 일정 공지를 보았고 게다가 어제 학교에서 학생처장과 마주쳤다. 나는 한번 쓱- 쳐다보고 지나쳤는데, 학생처장이 날 알아봤는지 잘 모르겠다. (학생처장이 중문과 전임교수이기 때문에.. 난 반드시..! 졸업논문 대체시험-HSK8급이상;;-을 통과할 것이다. 해야만 한다. 흑.)
지금 똑같은 일이 또 발생했다면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 때는 두려움이 참 많았다. ‘학점도 잘 받고 싶은데, 학내에서는 조용히 살고 싶었는데.’ 내가 문제제기를 한 이상 모두 ‘내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컸다. 실제로 학생들도 나에게‘만’ 기대를 거는 듯했다.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best를 차지했던 공간에서 순식간에 내 글이 히트를 쳤고 “저도 사실 그게 불만이었어요...”하는 댓글만 200건을 넘어갔다. 그래서 얼마 후 나는 “우리 뭉쳐보아요!” 하며 원하는 사람들은 쪽지를 보내거나 연락을 달라는 글을 남겼으나, 아무도 내게 연락 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내가 일을 좀 더 크게 벌리려면 1.학우들 여론 파악 2.조직화 3.투쟁 이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나는 1번에서 끝을 낼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숙대생들은 ‘말뿐’이었고 그중에 몇몇은 ‘다음엔 저도 동참할게요!’ 하기도 했으나 막상 연락을 해보니 다들 ‘시간이 안돼서...’ 라고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이게 우리학교 학생들의 현실이었다.
참 많은 고민을 했다. ‘그냥 대충 졸업이나 하고 말지’와 ‘이 학교 내손으로 바꿔봐?’ 하는 것 중에서... 결국 나는 전자를 택했다. 여기에 힘을 쏟느니 차라리 다른 NGO에서 뭐를 돕고 말지 하는 생각으로.
이제 학교에 대한 애정은 눈곱만치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섬김 리더십 운운하는 이경숙이가 권력으로 ‘소리없이’ 여성학과를 지워버린 그 순간부터 이경숙은 악마였고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 뭐, 꿈을 찾아 노력하라고? 이경숙은 그 꿈을 찾기 위해 여성학과를 택한 이들을 단지 ‘경영난’이라는 이유로 짓밟아버렸다. 적립금 1000억인 학교에서 ‘경영난’이라니 지나가던 생쥐가 웃겠다. 이제 우리학교는 인문학과가 전무하다. 이게 무슨 인문대학인가. 그냥 경영전문대학으로 빨리 바꾸라니까.
사실 내가 학교에서 일을 좀 더 크게 벌리려고 본격적으로 마음을 먹었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투쟁 계획을 짰을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이나 학위 사람들에게 사정하면 적어도 30명은 모이지 않았겠나. 그런데 일을 더 이상 벌리지 않았던 이유는 ‘귀찮아서’이기도 했다. 난 내 권리를 침해당하는 것에 민감하다. 그래서 불만을 터뜨렸지만, 나는 지극히 ‘내’ 권리에 민감하기 때문에 내 학과공부까지 버려가며 그 일에 몰두할만한 대단한 희생정신은 없었다.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라고 여겼고... 그래서 나중에는 그냥 ‘귀찮아서’ 떨쳐버리려고 한 점도 없지 않다.
몇몇 주위사람들은 나에게 아쉬움을 표했다. 너가 뭔가 더 해야 하지 않느냐는 둥... 뭐 나도 그러면야 좋겠지만, 내가 40%을 이뤄놨으면 다른 사람들이 조금씩 주체적으로 나서서 5%, 10% 조금씩 올리면 되지 않는가. 아예 안하는 것보다는 내가 40%라도 한 것에 대해서 수고했다는 것은 없고 내가 100%를 하지 못함에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게 상처가 되었다.
근데 그때 만약 좀 더 일을 진행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을 하니 웃기다. 아마 어쩌면 부모님께도 나를 커밍아웃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결국 된 일은 하나도 없다. 여성학과 학부와 대학원 모두 폐지되었고 동연은 총학 산하로 들어갔다. 더 속상한 것은 ‘동연이 총학 산하’가 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동아리 회원들이 많다는 것이다! 더더더더 속상한 것은 ‘동연이랑 총학이랑 뭔 차이냐’고 묻는 동아리 회원들이 많다는 것이다..!!!
데모를 했으면 효과가 컸을까? 당시에 나는 학내에서 뭐 딱히 ‘운동권’이라고 낙인될만큼 뭘 한 게 없기 때문에 내가 하는 데모는 ‘이미지’가 좋을 거란 생각도 했다. 그러나 결국 고민만 많이 하고 해낸 것은 하나도 없다. 내 학내 권리는. 포기해버렸다. (당시에 내가 블로그를 하고 있었다면 타학교에 서명도 좀 뿌리고 했을텐데, 했..으..려나? ㅎㅎ)
사실 지성인들이라면 대화로서 풀 문제였는데, 학교 당국과 학생처 사람들은 유감스럽게도 지성인이 아니다. 그래서 대화로 풀 수가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오랜만에 다시 지난 일을 떠올리니 씁쓸하다. 요 조그만 학교에서도 이렇게 일이 안되는데, 이휴. 운동가들은 정말 속 터지겠다. 명박이가 짱먹고, 한나라당이 짱먹고, FTA도 된다 하고... 앞이 캄캄하다. 세상에 이런 공포 특급이 따로 없다.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난 여전히 내 권리에 민감하고, 앞으로도 그 감각을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 불만을 소리 높여 외칠 일은 또 있겠지. 그렇게 적극적으로 변화를 주장해나가야겠지.
학교에 애정이 눈곱만치도 없는 나로서는 이만 다 털어버리도록 하겠다.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있을 여러 경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좋게 생각하고 끝을 내야겠다.
학생문화복지팀 고재식, 서영애 안녕, 학생처장 함은선 안녕, 이경숙, 그대는 제발 안녕,
P.S 넋두리 ☞ 그렇지만 이제 학생문화복지팀에서 올라오는 공지사항에도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짜증이 나고 ‘고재식’(팀장's name)이라는 이름의 동명이인만 있어도 기분이 나쁘다. (그 이름을 가진 멋진 사람이 하루빨리 나타나서 내 인식의 전환을 도와주길 바라요-ㅋ)

